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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같은 마을 큰언니

by 경주사랑신문 2023. 1. 17.

언니'는 나와 아내가 부르는 호칭이고, 온통 노인들로 구성된 시골 우리 동매마을에는 나이 80이 훌쩍 넘은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언니는 청학동이 있는 청암면 출신이다. 해방 직후 지리산 주변 곳곳이 그렇듯 여순사건 등 사상과 전쟁의 희생자들이 청학동 인근 마을의 봉우리와 계곡을 도피처 삼아 모여들었고, 이를 막기 위해 당시 정부는 청학동 일대에 소개령을 내렸다.

이때 언니는 고향에 논밭을 놔두고 회남재를 넘어 전 가족이 우리 마을에 새로 이주를 하고 그 후 결혼을 하고 슬하에 5남매를 가지게 된다. 결혼 전에는 청암에 두고 온 논밭을 놀려 둘 수 없어서 농번기에는 매일같이 몇 시간을 회남재를 넘나들며 농사를 지어야만 했고, 결혼 후에는 농사에 관심이 적고 자신의 취미 생활을 주로 즐기는 남편 덕에 시부모를 모시면서 적지 않은 논밭과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느라 잠시도 쉴 수 없는 숨 가쁜 삶을 살아야만했다. 그런 남편조차 돌아가시기까지 긴 세월 병구완을 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시부모님도 남편도 돌아가시고 자식도 장성한 후 언니 본인이 암이란 큰 병이 와서 일부 발가락을 자르는 장애를 가진 몸이 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홀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식들이 떠난 크고 작은밭을 가꾸고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몇 해전에는 고향의 엄마를 가장 살갑게 대하던 효녀 막내딸이 어린 자식을 두고 유방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린 탓에 그 슬픔이 이루 말할수 없는 힘든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언니의 인생은 해방 이후 지리산 근처에서 살았던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빨치산과 6.25전쟁, 혼자서 감당해야 할 농사일, 자신에게 닥친 암이란 큰 병, 장성한 자식의 죽음 등 그야말로 온몸으로 자신을 덮친 온갖 시련과 고통을 버티며 살아온 한 많은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언니의 굴곡 많은 삶과 달리 언니의 지금 얼굴은 거친 파도 후의 잔잔한 바다처럼 너무나 평안하고 여유롭게 보인다.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근처에 사는 나에게나 이웃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꿋꿋하게 살아간다. 같은 마을 바로 이웃에 혼자 사는, 또 다른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온 10살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여동생에게는 언니지만 엄마 같은 역할도 한다.

언니집은 우리마을 윗쪽에 사는 이웃들의 사랑방이다. 이웃 가구 10여명이 수시로 모여 식사를 하고 정을 나누는 언니 집은 수많은 길 잃은 고양이와 이웃들의 보금자리요 안식처이다.

언제나 잔잔하고 흔들리지 않는 말씨와 평화로운 언니의 얼굴은 어디에서 왔어요?하는 질문에 "뻐띵기며(버티며)살아왔다"고 한다. 뻐띵기며 살아온 그 힘든 삶 속에서도 우리에게 보여주는 온몸에 배인 이타심과 평상심이 담긴 언행을 한결같이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를 알기에 언니의 구런 모습에 우리 부부는 감탄하면서, 어머니 대하듯 살아간다. 세상에 자칭 도인도 많고 인격자도 많지만 내가 보기엔 언니야 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운 사람다운 사람의 참된 모습의 일면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웃 사람에게 빛과 사랑을 주는 그녀처럼 늙어가기를 기원해 본다.

절벽 위 바위에 홀로 온갖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우뚝 선 저 소나무처럼 우리의 큰언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튼튼한 소나무가 되었고, 지치고 힘든 우리를 그 그늘에 포근히 감싸주며 같이 어깨동무하며 걷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큰버팀목이 되고 있다.

언니가 지금의 건강이나마 오랜 기간 유지하면서 우리부부 곁에 오래오래 계시기를....

박홍희
귀농학교, 황토건축학교 등을 나온 뒤 5년전 악양으로 귀농
지리산 풍경이 그림같이 펼쳐지는 논과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