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수준의 예상치 못한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소득을 재분배하여 경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종종 정치적인 논란을 불러오곤 한다. 요즘은 주로 물가의 예상치 못한 상승(인플레이션)이 골칫거리지만 금이 화폐였던 100여년 전에는 이와는 반대로 물가의 예상치 못한 하락(디플레이션)이 사회적인 문제였다.
1880년부터 1896년 동안 미국에서는 물가가 무려 23%나 하락하였다. 이에 따라 주로 동북부에 물려 있던 채권자들은 엄청난 혜택을 보았지만 남부와 서부의 농민과 근로자들은 빚의 실질가치가 크게 증가하면서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금과 함꼐 은도 화폐로 유통시키자는 대안이 등장하였다. 금본위제도(Gold Standard)가 복분위제도(Bimetallic standard)로 바뀌면 화폐의 공급량이 늘어나 데스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쟁점이 되기에 이른다. 물가하락 시 수반되는 채무자의 고통을 대변하던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월리엄 브라이언(William Bryan)은 금과 은을 화폐로 같이 쓰는 복분위제를 주장한 반면 그 당시에도 보수세력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던 공화당의 대선주자 월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는 금본위제의 고수를 각각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로 엮은 것이 우리들이 어렸을 때 많이 읽었던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이다. 이 책은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프랑크 봄(Frank Baum)이라는 사람에 의해 씌어졌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잘 아는 바와 같이 소녀 도로시(Dorothy)와 그녀와 함께 길을 헤매는 허수아비, 깡통인형, 그리고 겁쟁이 사자이다.
미국 지도에 대각선을 긋고 교차점을 살펴보면 캔자스(Kansas) 주를 발견하게 된다. 캔자스가 고향인 도로시를 주인공으로 삼은 저자 봄은 이 어린소녀를 통해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물론 허수아비와 깡통 인형이 상징하는 것은 각각 농민과 근로자이다. 또한 겁쟁이 사자는 결국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후보 브라이언이다.
도로시를 포함은 4명은 금본위제를 뜻하는 노란 벽돌길을 헤매다 결국 오즈(OZ : 미국의 수도인 위싱턴 DC)에 도착하여 마법사(대선에서 승리하여 위싱턴 DC를 차지한 공화당의 매킨리 대통령)이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마법사는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가 자신의 은색 구두가 갖고 있는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고향인 캔자스로 무사히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 여기서 도로시의 은색 슬리퍼는 은본위제를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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